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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속 백병원 이야기

백병원의 의료 및 사회공헌 77년 이야기

지난 글에 이어
백병원, 아니 산하 5개병원을 모은 백중앙의료원 이야기입니다.

백병원은 경성의학전문학교 외과 주임교수 였던 백인제 박사가 1932년, 중구 저동의 현 서울백병원 위치에 있던 우에무라 외과병원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백인제 박사는 전 사재를 기부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 공익법인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하지만 1946년, 백인제 박사는 동생 백붕제 박사와 더불어 강제납북되고 당시 성모병원, 성심병원 등의 현대화 속에 백병원이 점차 흔들리고 있던 중 현 백낙환 이사장님이 1951년, 3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병원 현대화에 힘을 쏟게 됩니다. 
그리고 69년, 500병상 규모 예정으로 현대화된 종합병원인 서울백병원을 착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여러 난관들을 거치게 되어 70년에 일어난 오일쇼크, 
1971년에 경영악화로 인한 영락교회로의 헌납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백낙환 이사장님의 강력한 의지에 1972년, 1차로 150병상 규모의 서울백병원을 개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울백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면서 1978년 정부의 지원하에 부산의 사상공단에 2번째 부산백병원을 짓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1979년, 서울백병원과 부산백병원을 토대로 80명 정원의 인제의과대학을 설립하고 당시로서 부산,경남지역에서 최대규모였던 300병상 규모의 부산백병원을 개원하게 됩니다.  부산백병원은 1984년,  700병상 규모로 증축하게 됩니다. 

서울백병원은 1986년, 아시아 경기대회의 선수촌 전담병원으로 지정되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도 선수촌 전담병원으로 지정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1988년,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동에 
상계백병원을 착공한 후 이듬해 8월, 450병상 규모의 상계백병원을 개원하기에 이릅니다.

이 와중에 의학적인 성과도 거두었으니
1992년, 서울백병원의 제7대 원장이셨던 이혁상 교수님이 이끈 수술팀이 절제불능 간암환자에 대한 간이식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부산백병원에서는 흉부외과 개심술을 1,000례 돌파하며 풍부한 경험과 수술능력을 보였고 이어 97년에는 부산백병원의 흉부외과 조광현 교수님이 이끄는 수술팀이 부산,경남지역 최초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하게 됩니다. 부산백병원 신경외과에서는 94년에 전국에서 3번째로 첨단의료기기이던 감마나이프를  가동하기 시작하여 98년에 감마나이프 시술을 500례 돌파하게 됩니다. 상게 백병원에서는 당시 '척추 수술의 대가'이던 석세일 교수가 척추 센터 개소와 더불어 옮겨 오시게 됩니다. 
더불어 2000년 부산백병원 신경외과 뇌동맥류 수술 2,000례 돌파 등 다양한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이후 99년에 600병상 규모로 개원한 일산백병원에서도 2001년 뇌신경센터에서 척추종양 광자빔 수술 국내 최초 성공시킵니다.  같은해에 서울백병원 한국위암센터 김진복 원장은 평양의대서 위암수술을 시행해주고 오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2003년 서울백병원 김용인 교수팀, 국내 최초 최소절개 심장수술 및 오목가슴교정수술 동시 성공, 2004년 부산백병원이 국내에서 두번째로 지역임상시험센터로 선정도장기이식센터의 국내 최연소 뇌사자 양측 신장(9개월) 성인 이식 성공,
2007년 부산백병원이 경상권 희귀질병 지역거점 센터 지정 등 많은 의료성과들을 내놓게 됩니다. 

백병원은 이외에도 사회공헌에도 앞장서 왔습니다.
국민들의 공공의 건강 증진을 위해 시작한 서울백병원 당뇨교실은 94년 500회를 넘게 됩니다.
96년 성형외과 팀의 베트남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2000년에는 얼굴기형 어린이 성형 수술을 1,000례 돌파하게 됩니다. 
98년 백병원 전직원의  '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참여, 2004년부터 서울백병원 안과 팀의 '사랑의 무료 개안 수술' 실시 및 2007년에는 상계백병원이 그동안의 봉사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보건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2010년 3월, 부산 해운대구에 1,000여병상 규모의 해운대백병원 개원을 앞둔 해운대 백병원. 
앞으로의 백병원의 발전을 지켜보겠습니다.:)